열린마루


약과 대란! 조선시대에는 먹으면 곤장 80대?

최근 들어 약과가 유행인데요!
달콤하고 맛있어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우리나라 전통 한과죠?
이런 장점이 더욱 유행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접시위에 있는 약과를 바라보는 식빵이 어쩐지 밥을 안 먹더라! 저걸 다 먹으면 어째! 으악

식빵이도 한 번 약과를 먹으면 수 개를 그 자리에서 다 먹을 만큼 많이 좋아하는데요.😋
하도 많이 먹어서 명절이면 그만 먹으라며 어른들께 혼났던 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친근하고 맛있는 약과가 조선시대에는 귀한 사치품이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오늘은 약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흔한 약과가 조선시대에는 사치품?

참기름 유 꿀밀 과 요즘 저것이 유행이라지? 그려에서 온 과자인데, 그렇게나 맛있다오

처음으로 약과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인데요!

​고려시대에는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
고기와 생선을 부처님께 올릴 수 없었다고 해요.

그 대신 소중한 제물로 바치기 시작한 것이 약과입니다.

그 시절 약과는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참기름을 뜻하는 유(油), 꿀을 지칭하는 밀(蜜)을 사용하여 유밀과라고 불렀으며,
그 당시 매우 귀하고 비싼 밀가루, 기름, 꿀로 만든 사치품이었습니다.

쉽게 먹을 수 없는 사치품이었지만 너무나도 맛있어서 약과의 유행은 고려에서 원나라까지 퍼졌는데요!

원나라 때의 기록을 보면 고려의 약과를 ‘고려병’이라고 부르며 아주 좋아했다고 합니다.
원나라 잔칫상에 약과가 올라갈 정도면, 엄청난 인기였겠죠?

약과를 먹으면 안 된다는 금지령까지?!

나라 안의 꿀과 참기름이 동나겠도다! 약과 먹다가 걸리면 곤장

맛있는 데다가 유행인 만큼, 당시 고려인들은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데도 약과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나라 안의 꿀과 참기름이 동이 나고 물가가 오를 만큼 약과를 많이 만들어 먹자,
고려시대 명종과 공민왕은 약과를 만들어 먹지 말라며 형법으로 금했는데요!

고려사에 따르면 명종 22년(1192), 공민왕 2년(1353)에 약과 금지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약과의 유행은 고려시대에서 멈췄을까요?
아니요, 조선시대에 가서도 약과의 유행이 그대로 전해졌는데요!

조선시대 약과는 민가까지도 널리 유행했기에 특별한 날이면 약과를 많이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다시 금지령이 내려졌고,정조 때의 대전통편을 보면
‘민간인이 결혼식이나 장례식 때 유밀과를 사용하면 곤장 80대에 처한다.’
라고 할 만큼 명절에 조심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한과에는 무엇이 있을까?

강정이미지, 과편이미지, 다식이미지, 엿강정이미지

약과를 제외한 다른 한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낯익은 강정부터 낯선 숙실과, 과편처럼 많은 한과가 존재합니다.
하나씩 알아볼까요?

강정
튀긴 찹쌀떡에 여러 고물을 묻힌 과자로, 넓적한 사각형 모양은 ‘산자’,
작은 것은 ‘강정’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과편
​ 과일로 만든 묵인데요, 신맛이 잘 나는 딸기나 앵두, 모과, 오미자 등을 삶아서 으깬 뒤
녹두 전분과 설탕을 넣고 졸인 뒤 굳혀 먹습니다.

다식
깨, 콩 등의 곡식 가루를 꿀로 반죽한 뒤, 모양틀에 찍어내어 먹는 과자인데요,
틀에는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사자성어 등이 새겨져 있어 제사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엿강정
곡식, 견과류를 부순 뒤 엿물을 부어 굳혀 먹는 과자로, 약과처럼 현대에도 자주 보이는 한과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많은 한과가 존재하는데요!
맛있는 우리나라 전통 과자들은 대부분 높은 탄수화물로 이루어져 있어,
식사한 후에 간식으로 많이 먹게 되면 살이 잘 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적당히 섭취하는 게 좋겠죠?

오늘은 식빵이와 함께 약과를 비롯한 한과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약과가 유행한 것이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기회로 여러분께서 맛있는 한과도 먹어보고,
전통 음식에 대해 더욱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