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입사 당시 나는 서울 불광역에서 밤 12시 15분 막차를 타며 퇴근하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식약렐라’라고 불렀다. 내가 처음 맡은 업무는 의약품을 허가하기 위하여 제약회사가 제출한 안전성·유효성 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서류를 열심히 검토했고, 그러다보니 밤 12시를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 남들은 오버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놓치는 글자 하나, 숫자 하나가 안전하지 못한 약을 허가하는 결과가 되고, 그래서 그 약을 먹는 나의 가족, 우리 국민들이 부작용으로 고생할지 모른다는 걱정과 부담감, 그리고 책임감에 늦은 시간까지 서류를 뒤적이고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12시가 다가오고, 달랑달랑한 막차를 타네 못 타네 하며 황급히 지하철역까지 뜀박질하곤 했다.

글 서울지방식약청 위해사범조사팀 조민주

많은 사람들이 아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유럽, 일본 등 세계 46개국에서 허가·판매된 약으로 12,000명의 기형아가 출생·사망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FDA 심사자인 프랜시스 켈시박사가 이 제품을 허가하지 않아(안전성·유효성 심사 자료에 일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많은 미국인들을 비극으로부터 구한 사건이다. 이러한 안전성·유효성 심사의 중요성 때문에 나와 심사부서의 다른 선생님들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상당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식약처 공무원들의 야근은 일상적인 생활이었다. 당시 내가 밤12시에 부랴부랴 건물을 나설 때에도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던 부서가 한 둘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러한 상황은 여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몸담았던 서울청 의약품안전관리과에서는 의약품 및 생물의약품(백신, 혈액제제, 세포치료제 등)의 제조업소가 허가 후 제대로 의약품을 제조·수입하여 관리하고 있는지 사후점검을 한다. 또 2015년부터 의무적으로 한약재에 도입되는 제조 및 품질관리(GMP)를 위하여 한약재 GMP 허가를 받고자 하는 분들(기존 제기동에서 한약재를 제조하시는 분들이 많았다)께 컨설팅을 해드리고, 한약재 GMP 신청한 업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나가 제대로 시설이 갖추어졌는지, 작업원은 잘 숙련되었는지 등을 확인했다. 또 대학병원 및 인체조직 수입업소 등 인체조직은행에서 뼈, 혈관 등의 인체조직을 절차에 맞게 제대로 잘 채취하여 가공·처리·수입·분배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러 다니는 업무도 했다.

이 외에도 화장품 제조판매업 허가를 위한 시설조사 등을 다니느라 서울과 강원도, 경기도 일부 지역을 누비며 출장을 다녀야 했다. 이밖에 내근하는 날이나 점검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점검·확인한 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다. 또한 시설과 장비가 제대로 갖추었는지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나라도 더 많이 알고 있다면 업체에게 더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기에 출장 전날에 밤샘 공부한 적도 많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밤샘 공부를 말이다. 처녀시절엔 막차를 타며 다녔지만,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난 뒤 내가 선택했던 것은 바로 밤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우고 몽유병환자처럼 밤 11시쯤 부스스 일어나서 새벽 3~5시까지 보고서를 작성하고 법령과 해설서 등을 공부하며 다음 출장준비를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지냈다.

그 후 발령받은 유해물질분석과에서는 의약품 및 화장품 수거검사 때문에 늘 밤 9~10시, 밤 11시 30분에 퇴근하면서도 늘 부끄러운 마음으로 퇴근해야 했었다. 실험은 서류가 아니라서 집에 가져올 수도 없어 늦은 퇴근을 피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려 엄마랑 같이 자겠다며 자정까지 안 자며 기다렸고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께서 그 시간까지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봐주셨기 때문에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애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내게 묻는 첫마디가 “엄마, 오늘 또 늦어?”였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도 했었다.

이런 시기를 지나 현재 나는 위해사범조사T/F팀 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이 팀의 업무량도 그간 거쳐 온 과들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식·의약위해사범을 조사하고 약사법, 식품위생법 등 위반 사건들을 수사하는 우리 팀은 팀장님을 포함하여 3명이다. 그러나 현재 수사 중인 사건만 10건이 넘는다. 인원이 적다고 내가 맡은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아이들을 재운 뒤 우리 집엔 ‘톡톡토도톡...’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는 타자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야근=열심히 일한다’는 등식이 성립할 수는 없다. 능률적으로 제시간에 일을 다하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내 능력이 부족한 탓에 그 틈을 메꾸려고 나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우리 청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나처럼 늦게 자는 사람이 많다라기 보다는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정말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이처럼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친구들이, 일반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공무원들은 칼퇴근 하잖아”라는 말에 상처받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식약렐라’로 시작했던 나의 식약처 직장생활이 이젠 ‘올빼미’녀로 진화한 것은 같다. 집에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적은 이런 삶이 최선이냐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나는 오늘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작은 사명감으로 작성 중인 수사보고서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