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위해사범조사팀 조민주

“어멈아, ‘ooo 맛집’ 여기 어떻게 가는지 아니? 오늘 약속이 있어서...”
“‘ooo 맛집’이요? 제가 찾아봐드릴게요. 자...”
시어머님 앞에서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을 클릭하니, 지난 번 열어놓은 인터넷 창이 뜨는데... 헉!!
남자의 중요 부위 사진, 비아그라, 정력왕, 밤이 뜨거워... 이런 낯 뜨거운 사진과 글귀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시어머님께서 황급히 몸을 펴며 뒤로 물러서시는데... 혹시, 이것을 보신 것일까? 아니면 아직 못 보신 것일까? 아니라고 해명할까 싶다가도 못 보셨다면 굳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무 말 못하고 새로 연 창에서 ‘ooo 맛집’ 가는 길을 찾아 드렸다.
그런데 억울하다고요! 저는 그런 여자 아니라고요!

내 스마트폰 인터넷 창에 낯 뜨거운 내용들이 뜨는 이유는 바로 내가 지금 근무하는 곳 때문이다. 나는 서울식약청 ‘위해사범조사T/F팀’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위해사범조사T/F팀’이란 약사법, 식품위생법, 축산물 위생관리법 위반 등의 사건을 조사하고, 피의자를 송치하는 일을 담당하는 부서다. 현재 식약처 본부에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라는 정식 직제의 식 의약위해사범을 조사하는 과가 있으며, 각 지방청마다 T/F팀을 조직하여 관할 구역의 식 의약위해사범을 효율적으로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지금 지방청 중 서울식약청 ‘위해사범조사T/F팀’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약사법 위반, 식품위생법 위반사항 등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타 부서의 수사의뢰와 제보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내 스마트폰에는 낯 뜨거운 내용의 검색어가 많이 있다. 약사법 위반자들이 무허가 의약품, 위조의약품, 의약품이 아닌 물품들을 광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검색하는 키워드 역시 비아그라, 정력 등 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검색과정에서 행여나 위반되는 내용이 뜨면 일단 스크린 캡쳐를 하고 그 창을 열어둬야 한다. 당장 내사에 착수해야겠지만, 지금 우리 팀에는 수사해야할 사건이 산적해 있다. 서울청 타과에서 수사의뢰한 사건들과 자체적으로 모니터링해 발굴한 사건들만 10건이 넘는다. 팀장님을 포함하여 총 인원이 3명인원인데 말이다. 그래서 일단 쌓여있는 사건들을 수사하여 마무리 짓고 난 후에야 모니터링한 사건들을 수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건들이 산적해있음에도 모니터링을 멈추지 않는 것은 진행 중인 사건들이 해결되고 난 후를 대비하여 수사거리를 준비하려는 것도 있지만 진행 중인 사건들 수사하는 동안 위중하고 중대한 위반 사건이 발생할까 걱정되어서이다.(위해도가 큰 위중한 사건이거나 시급히 착수해야할 사건인 경우 다른 사건보다 우선적으로 진행하거나 본부 위해사범중앙조사단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한다)

남들은 출·퇴근길에 영어공부를 하고, 또는 쪽잠을 자거나 책을 읽거나 하지만 나는 출·퇴근길에 온갖 낯 뜨거운 단어, 불량식품 이름 등 불법스러운(?) 내용을 매일 검색한다. 서울 식약청(신목동역)은 9호선 라인이라 매일 아침 지옥철을 경험하며 출근하는데, 내 옆과 뒤로 밀착되어 붙은 아저씨들중 분명 몇몇은 내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지만 사무실에서는 수사업무 하느라 바쁘고, 집에 와서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바쁘고, 따로 검색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숨 한번 제대로 쉬기도 어려운 지옥철 안에서 꿋꿋하게 낯 뜨거운 단어들을 검색한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낸 약사법 위반사항 등도 당장 수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인터넷 창을 열어둔 채 놓아두다보니 시어머님께, 직장 동료한테, 길가다 무언가를 물어본 행인들한테 오해 아닌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가끔씩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한다. 우리 집은 지하철역과 3분 거리에 있는데, 퇴근길에 가끔씩 불법 전단지가 붙어 있을 것 같은 동네에 무작정 내려 뭐 없나 기웃거리다 보면 귀가가 예정보다 20~30분씩 늦어지곤 한다. 집에서 무슨 일 생겼느냐는 근심 어린 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이다. 머릿속이 수사 생각으로 가득하다 보니 종종 이런 해프닝들이 벌어진다.

어떤 분들은 간혹 내가 오버한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수사관’이기에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주위엔 위법행위가 참 만연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허가 의약품·위조의약품 제조·판매부터 질병 치료 효과가 있다고 식품을 허위 광고하는 건 등 여러 가지 위반사항 등이 있는데, 이러한 불법행위들을 모두 잡아내려면 우리나라 식·의약 전문 수사관들이 지금보다 몇 십 배는 더 있어야 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팀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위반사항도 경중을 나누어 처리하게 된다. 위법 사항으로 국민건강에 위해가 있는가, 피해상황은 어떤지, 얼마나 고의적이며 규모는 어떠한지 등에 따라 구분해본다는 것이다. 나는 판검사도 아니기에 감히 죄의 경중을 판단할 수 있겠냐만, 사건의 피해규모와 위중함 등의 내 나름의 기준으로 나는 한두번의 모니터링에 그치지 않고 발견한 사건보다 더 큰범죄는 없는지를 계속 찾아 필히 근절되어야 하는 범죄들부터 수사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내 스마트폰 인터넷 창은 닫혔다 열렸다를 무한히 반복하며 뜨거운 내용들로 도배를 하게 된다. 자연히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게 두렵거나 부끄럽지는 않다. 그만큼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반증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주변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법을 잘 준수하여 아무리 검색해도 더 이상 위반사항이 검색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또 검색한다. 나의 고뇌와 노력으로 찾은 ‘사회가 바뀌고 인식이 변하는 사건들’이 수사가 되고 범죄자가 처벌되어 사회가 변하고 모든 사람들이 법을 준수하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검색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추신: 그런데 어머님, 어멈은 그런 사람 아닙니다. ~~;;